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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선의 뒷동산

영선(대혐수)

1화, 2화 후감상.

-우선, 작품과 저의 포부에 대해 :

  원래는 웹툰용 시나리오였습니다. 저 자신이 그려낼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협업을 부탁드릴 그림작가 인맥도 없는  처지입니다만. 

  특히 "순정만화"풍 그림으로, 그것도 90년대 초중반 풍의 스타일로 그려졌으면 좋겠다고 바랐었습니다. 사실 순정만화란 건 주로 여성작가들이 주로 여성독자들을 타겟으로 그린 작품들을 뭉뚱그려 일컬은 명칭이죠. 말이 순정만화지 순정만화로 분류된 작품들 안에 얼마나 다양한 장르가 있었던가요. 이 부분은 최근의 여성주의 창작 붐 덕분에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참 다행스럽지요.

  다양한 시도와 다양한 서사들을 순정만화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리는 건 다분히 폄하의 의도가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순정만화 장르를 얕잡아보던 놈이었습니다. 고백하건대, 이 작품은 그 시절의 어리석음에 대한 사죄이기도 합니다. 이제서야 순정만화 작가들과 그 작품들을 존경하게 된 제가 감히 그 작가님들의 시도를 흉내내보려는 것이죠. 아니, 사죄라기보다는 한탄에 더 가깝지 않을까요? 그 때 그 작품들을 좀 더 진지하게 읽어봤어야 했는데.

 

  해서 말이지만,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이 순정만화풍 그림으로 그려진 걸 상상하며 우헤헤 행복해하고 있음을 고백해야겠습니다. 순정만화풍 그림에 주로 붙는 수식어가 "유려함"인데, 그 유려하고 장엄한 모습으로 당당하게 그려진 세 여신들을 떠올리면 너무너무 행복해요. 사실상 이 작품을 써 나가게 되는 원동력이라고 하겠습니다.

 

 

 

1화.

 

 

-1막 "여신재래" :

다분히 일본 만화책에서 애용될 것 같은 조어입니다... 사실 제목 자체도 모 일본만화 제목을 패러디한....것이죠. 이 제목이 어그로를 좀 끌어서 독자들을 모을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물론 요즘 장르소설 제목 트렌드하고는 좀 거리가 있긴 하죠.

  아무튼 여신재래입니다... 장엄한 느낌을 연출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요.

 

 

-위노나의 시험 :

  이건 어떤 신화관련 책에서 본 이야기를 거의 그대로 옮겼습니다. 아마 아일랜드 신화였던가 그럴 거 같은데, 원전이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나요. 아무튼 그 이야기에서 이번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죠.

 

  다만 각 왕자들의 성격차이가 재미있게 드러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썼습니다.

 

 

-로미가 할멈을 생각하는 방식 :

  꽤 신경쓰며 썼습니다. 세 명의 왕자들이 독자들에게 미움받을 것을 각오하며 쓰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급적이면 제가 "미움받았으면 하는 부분"에서 미움받기를 바라니까요. 의도치 않은 부분, 일테면 사랑받기 위해 쓴 대목에서 로미가 미움받는다면 작가로서 엄청 당황스러울 겁니다.

  이번에는 로미가 할멈을 두고 하는 이런저런 생각이 위험지대였습니다. 로미는 기득권층 오브 기득권층의 사람이고, 할머니는 그 반대에 있는 사람이죠. 물론 세 왕자들이 할머니를 보고 반응한 방식은 이래저래 평가가 갈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외모를 보고 바로 빤스런한 디트리크나, 자기 지식만 늘어놓는 헛똑똑이질을 한 루미냐크는 더 하겠습니다만, 로미의 대응도 독자들의 해석이 어떻게 나올지 잘 모르겠어요.

 

  독자 의견이 갈리는 걸 두려워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어떤 의견이 나올지 궁금합니다. 많이많이 의견을 내주셨으면 합니다(그러려면 일단 많은 분들이 읽어주셔야 하는데 여기부터 이미 난관...). 다만, 단 하나, 로미가 공감능력 없는 사이코패스 같이 되는 것만은 막아야 했습니다.

  장애인분들의 경험담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주로 장애인분들에게 "시혜"를 내려주면서 싸구려 만족감을 느끼는 비장애인들에 대한 경험담들입니다. 순전히 장애인들의 일상에 대해서 아는 것 하나도 없고 알고 싶지는 않지만, 우월감은 느끼고 싶은 비장애인들이 이런 짓을 합니다. 나름대로는 선의에서 하는 짓임에도 장애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행동패턴을 가리켜 "대상화"라고 하는 거겠고요. 로미가 이런 짓을 저지를까봐 굉장히 걱정했습니다.

  그리고 고백하건대 저도 상당히 기득권층 인간이며, 거기다 방구석맨이기 때문에, 제 공감능력은 책으로 배운 공감능력에 지나지 않습니다! 작가인 제가 이런 식이니 로미가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까 불안할 밖에요.

 

  로미가 할머니에게 한 행동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면 저는 흥미롭게 읽을 것입니다. 하지만 로미가 "일방적인 시혜를 내려주고 자기가 착하다고 만족하는 녀석"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저는 그 평가를 정독하고 본문내용을 수정하게 될 겁니다.

 

 

-위노나 :

  당연히...영화배우 이름을 딴 것입니다. 여신들의 이름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 더.

 

 

-시간 만큼이나 오래 된 옛날 :

  혹시 아시려나요? "Tale as Old as Time"을 번역한 말입니다. 노래도 좋아하지만 이 첫 구절을 정말 너무너무 좋아해요. 혹시 관용어구인가 해서 알아봤더니 그렇지는 않더군요. "옛날 옛날에"에 해당하는 표현은 "Once Upon a Time"이 제일 잘 알려져 있습니다만, 어쨌든, 미로디바 왕국에서는 "시간 만큼이나 오래 된 옛날"이 옛날이야기를 시작하는 관용구입니다.

 

  사실 상대가 디즈니니까 조금 후달리는 감도 있지만 ㅎㅎ 엄밀히 말하면 직역한 것도 아니니까요! 아마 이 작품을 영어권에서 출판할 때 번역가가 고심할 필요는 있겠지만, 애초에 그런 일이 벌어질 리 없으니까 쓸데없는 걱정은 안 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엄밀히 말하면 "시간 만큼이나 오래 된 옛날"은 "Tale as Old as Time"에 비하면 시적인 완성도도 많이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흑흑...

 

  그나저나 1화 끝부분의 옛날 이야기 부분은, 업로드하고 얼마 후에 새로 덧댄 부분입니다. 1화를 읽고 뒷부분을 조금이나마 예측하게 해줘야 한단 생각이 들었거든요. 조치가 충분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실 소설가로서의 제 약점은 "슬로우 스타트"로 쓴다는 부분이고, 이번엔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려고 조금 조급해져서 쓰고 있습니다. 제가 잘 하고 있는지 확신은 전혀 없습니다... 특히 위노나에 대한 초반묘사가 충분한지 굉장히 불안해요.

 

 

  2화.

 

 

-설명충 파티 :

  본론에 빨리 들어가려고 한다, 고는 하지만 2화부터 세계관 설명 파티가 벌어집니다. 이 소설의 앞날이 어둡습니다!

 

  그러나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판에, 모든 소설이 다 첫 화부터 살인사건을 목격하거나, 드래곤에게 먹히지 않으려고 이의제기를 하는 걸로 시작할 순 없잖아요!!!!

 

  ...이상 비겁한 변명이었습니다. 피어클리벤의 금화 재밌어요. 종이책 빨리 나와라 얍.

 

 

-신담계보학자 :

  물론 신담이란 말은 제가 만든 말입니다. 신화+민담인데, 여신의 이야기가 민담 비스므리한 소박한 형태로 전승되고 있으나, 왕권의 신성함을 뒷받침해주고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 신화의 격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죠.

 

  이 작품이 중세풍 세계관을 배경으로 합니다만, 가급적 가톨릭 요소는 제거하려고 합니다. 탐욕스럽고 세속적인 교황이 나오고 성기사가 나오고... 너무 뻔한 거 같아서요.

  그보다는 오히려 굉장히 원시적이고 미개한 형태에 가까운 여신종교를 상상해보려고 했습니다. 아마도 일본 신도 비슷한 "분위기"가 아닐까 하네요(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신도하고도 무관하다시피 할 겁니다). 여신 신앙이 어떤 식으로 굴러가는지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중세풍 판타지를 쓰면서 가톨릭 요소를 빼는 건 굉장한 도전입니다! 중세문화, 중세 역사에서 가톨릭은 굉장히 중요한 기둥이니까요. 가톨릭요소를 뺀다는 것은 실제 역사를 참조하면서도 제 상상력으로 재구성해야 하는 영역이 더 커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아무튼 그렇다보니 가톨릭식 위계서열도 없고, 교황이나 추기경에 해당하는 성직도 없습니다. 그래도 "신담계보학자"라는 사람이 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설명역으로 등판시킨 감이 있는 인물이죠. 초고에는 설명을 국왕이 했는데, 나름 분위기를 잡아야 하는 사람이 나불나불 말이 너무 많아져서요.

  신담계보학자라는 명칭은 워해머의 "Grand Theogonist"에서 따왔습니다. 우리말로는 대계보학자 혹은 대신계보학자라고 번역됩니다. 대신계보학자는 워해머 세계관에서 교황님 쯤 되는 대단한 직책입니다만, 신담계보학자는 권력이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이유는 후술.

 

 

-사라지는 여신

  초고에서 가장 고민되는 부분이었습니다. 매 세대 수호여신이 나타난다, 라고 하려다보니, 생각해보니 그럼 여신들이 세상에 너무 많이 현신하는 거 아니려나 싶더군요. 수호여신과 왕자가 제대로 연애를 하려면, 적어도 왕자가 15세~20세 정도일 때 여신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고, 계산해보면 약 20~30년 주기로 여신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이상한데? 여신의 공급이 지나치게 많으면, 수요공급 법칙에 따라 여신의 가치가 폭락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1)여신은 매 세대 나타나는 게 아니라, 왕국의 운명이 약해질 때에만 나타난다. 보통 100년 정도의 주기.

 

  2)여신은 매 세대 나타나기는 하는데, 왕자들에게 수호여신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 사실을 발설하지 않는다.

 

  2번은 너무 말이 안 돼죠. 1번 쪽으로 생각이 기울던 참이었는데, 그렇지만 그런 식이면 "왕가의 비밀"이라는 부분이 좀 많이 약화되어버리는 것 같아 아쉽기도 했고요, 그러나 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어쨌든 여신이 나타나긴 나타난다는 것이죠. 여신이 정말로 나타나서 대단한 위업을 발생시킨다면, 그건 이미 신담이 아니라 역사가 되어버립니다.

 

  어쨌든 여신 등장이 "서프라이즈"이길 바랐어요.

 

  그래서 결국 최종낙찰된 것은 "수호여신이 새로운 왕국의 운명이 되는 순간 그녀는 신화적 존재가 된다 = 비현실적인 존재가 된다" 였습니다. 이게 앞으로의 이야기를 짜는 데에도 유리함이 많을 것 같았어요.

 

  물론 따지고 들면 말이 안 되는 부분은 분명 있죠.

 

  아무튼 여신이 비현실적인 존재"여야만"하는 탓에, 그리고 여신 신앙이 가톨릭 같은 체계적인 조직을 갖춘 것은 아니기 대문에, 신담계보학자는 말 그대로 골방의 박사님같은 형상일 뿐 권력자는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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